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 기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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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명
-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 기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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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제
- 동학농민혁명은 「무장 기포지」로부터「4월 25일」의 함성은 전국적인 봉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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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무장현 기포지(공음면 구수내) 및 무장현관아와 읍성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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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최
- 고창군/축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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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주제전달로
무장기포
역사적 사실 부각 -
동학농민혁명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로 구성 -
문화적 관아와
읍성 체험행사장화 및 시가지
축제화 -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 기여 및 무장읍성의 성지화
새로운 역사를 향한 동학농민혁명의 횃불을 다시 밝힌다
1894년 1년 동안 전개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은 조선봉건사회의 부정과 부패에 척결, 나아가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고자 했던 대규모의 민중항쟁이다.
조선봉건사회로 근대사회로 이끈 최대의 사건이며, 동아시아의 한중일 삼국의 역사적 운명을 뒤바꾼 역사적 일대 변혁이었다.
고창은 전봉준의 생가가 있는 곳이고, 1894년 3월 20일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적 전개를 알리는 무장기포가 일어난 곳으로 동학농민혁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고창지역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내부에서 가장 강력하고 중심적인 활동을 하였던 손화중 포의 근거지였다. 손화중은 무장에 포교소를 설치하고 동학을 포교하였다.
그는 전라도 서남부
지방일대에서 가장 큰 동학교세를 확보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백산에서 김개남과 함께 총관령으로 추대되어 황토현전투와 황룡천전투 승리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현재 고창에는 무장기포당시 농민군이 숙영을 하였던 여시뫼봉을 비롯하여, 농민군이 점령하였던 무장관아, 고창읍성 그리고 손화중 도소 등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유적이 남아있다.